1장 대지진 발생어쩌지

 

번개소리와 같은 합판이 갈라지는 소리가 귀에 울렸다마치 텀블링 하듯 뛰어오르며그것은 시작되었다.

천장 조명이 깜빡이고 비명과 신음 소리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울려퍼진다아래서 뚫고 올라오는 진동이 엉덩방아를 찐 온몸에 전파된다.

이상한 소리를 내며 니시타니 히사타로는 벽에 등을 대고 깜빡깜빡 거리는 천장의 형광등을 바라보았다엘리베이터가 낙하한 것이 아니란 건 감각적으로 알 수 있다지진 –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지진수도권 대지를 꿀렁꿀렁 물결치게 하여 이 도청을 밑바닥부터 흔들어 쓰러트릴 만큼의 상식을 벗어난 수준의 지진이실로 지금 일어난 것이다누군가의 엉덩이에 얼굴을 짓눌려 제대로 숨도 못 쉬는 혼란 속니시타니의 가슴 한편에 떠오른 건 결국이란 한 단어였다.

그렇다결국온다고 온다고 끊임없이 말 했었고텔레비전과 주간지에서도 어마어마한 피해를 예상했던 궁극의 재난 – 관동대지진전동차 안 광고에 쓰여 있는 수도붕괴’ ‘사상사 수 천 명’ 이런 문구를 보며 무섭다는 생각은 하면서도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는 언제가 찾아올 죽음과 같은 뜻이었던 수도 직하형 지진그것이 결국 시작되었다.

하지만 왜하필이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는 때에그것도 도쿄도청이라는 신주쿠에서도 1, 2등을 다투는 고층빌딩 안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는 때에이성은 작용되지 않으며니시타니는 공포 속에서 눈을 갈팡질팡 움직였다깜빡이는 조명 아래로 떠오르는 동승자들의 얼굴얼굴얼굴다들 파랗게 질려 굳어졌고벽에 등을 기대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도청 직원들도 그렇다문뜩어쩌면 폭탄 테러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으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진동이 인공적인 것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이 진동은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인가이대로 엘리베이터의 케이블이 끊어져 1층 로비에 내팽개쳐지면...... 허공에 매달린 내 몸을 실감한 순간항문이 오므라들며 발밑에 펼쳐지는 로비 1층의 광경이 니시타니 머릿속에 떠올랐다요 한 달 간계속 드나들던 현관입구이제 그곳을 살아서 나가지 못 할 거라 생각하니정말 도청스러운 모습의 로비가 눈부신 빛의 이미지에 감싸여, ‘맞다갈퀴!’ 이런 신의 계시와 비슷한 목소리가 니시타니 머릿속에서 폭발했다.

실용품이 아닌 추녀 탈방망이작은 망치 등경사스런 아이템을 매단 길조를 비는 갈퀴도청 제1본청사의 2층에는 그것이 장식되어 있다매우 크다손잡이 부분도 포함하면 5미터에 해당하는 물건이 인포메이션 옆 벽에 와이어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오늘은 그 갈퀴를 깜빡 잊고 있었다도청에 올 때는 반드시 기도를 올리곤 했는데그래서 이런 꼴을..... 이러한 단정으론 이어지지 않았고니시타니는 눈을 꼭 감았다.

눈 안에서 갈퀴에 장식된 추녀 탈이 미묘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임종의 순간에 떠올리기엔 너무나도 끔찍한 미소였다.

 

도청 제1본청사는 도청의 중심적인 건축물이다지상 48높이 243미터. 33층부터 상부는 두 채로 갈라져, 45층에는 무료입장 전망대를 운영하고 있다.

1층에는 도쿄 관광정보를 PR하는 코너와 매점이 있고천장이 없는 형태인 2층에는 도정관계서적을 다루는 서점과 도청 인포메이션이 있다이 두 층이 로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전망대 목적인 관광객다양한 민원으로 찾아오는 사람들 등평일에도 웬만한 규모의 공항을 연상시킬 정도로 붐비고 있다니시타니가 갈퀴를 발견한 건 한 달 전처음 도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었다.

아주 거대한 물건이었다약 3미터의 갈퀴의 중심에 미니추어 도청과 배후를 지키는 추녀 탈좌우로는 마네키네코와 거북이가 배치되었고, ‘도쿄부’ ‘도내안전’ ‘천객만래라 적힌 팻말이 그 전면에 나란히 장식되어있다역시 일본의 수도를 다스리는 도청의 갈퀴너무 경사스러운 거 아닌가 생각하며 보고 있자,

그거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거라 하네

인포메이션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환갑으로 보이는 경비원이 말을 걸어왔다파란 셔츠에 파란색 바지왼쪽 어깨에는 무전기가 달린 복장에 소리꾼을 떠올리는 걸쭉한 목소리였다는 걸 기억하고 있다.

저기 봐봐오오토리신사라고 적혀 있지아사쿠사에 있는 오오토리신사가 기부한 거야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굉장한 거라네

도청의 만물박사와 같은 모습의 경비원은그럼 가장 큰 갈퀴는 어디에 있죠이렇게 대화를 이어나가려한 니시타니를 무시하고 씩 웃었다.

자네영업 쪽 사람이지아마 복 받을 거니까 꼭 절을 올리는 게 좋을 거야

그렇게만 말하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는 표정으로 떠났다갈퀴 앞에 남겨진 니시타니는 거대한 유리창에 바친 자신의 모습에 시선을 옮겼다.

딱 봐도 니시타니 히사타로는 영업사원이다그가 다루는 건 책상 위에 까는 매트방금 전의 경비원을 한 번 보고 경비원이라 안 것처럼니시타니를 영업 사원으로 보이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인가창문에 비친 42세 중년 남자와 눈싸움을 하며 니시타니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회색 정장에 가죽 구두목덜미만 깔끔하게 정리한 헤어스타일평균 체격에 평균 키......를 자칭하던 건 10년 전의 일이고현재는 점점 중년 몸매의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매트를 보다 아름답게 보이게 하기 위해 손 관리만은 정성을 들이고 있으나그런 건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결국 눈에 띄는 건 아무것도 없다. ‘영업사원’ 이렇게 말하면 크게 빗나가지 않는 무명의 샐러리맨인가가볍게 탄식을 한 니시타니는 자조적인 쓴웃음을 갈퀴에 던졌다.

안녕하십니까영업하는 놈입니다아껴주십시오

갈퀴의 공덕은 즉시 발생했다그날 중에 다음 방문할 때 샘플을 가지고 와보라는 포인트를 담당자에게서 따낸 것이다이후도청에 얼굴을 비출 때마다 먼저 2층에 들리는 것이 니시타니의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니시타니가 취급하는 고급책상매트 납입이 결정되었다원청이 길을 터주었다고는 하나랭크가 높은 매트 세일즈에 성공한 건 니시타니의 공적이며사내에서의 그의 주가는 크게 올랐다오늘 10월 16일은 그 최종적인 미팅을 가지는 날로담당자와 이야기를 마치고 엘리베이터에 탄 건 오후 6시 6분 29초의 일이다기기변경한지 얼마 되지 않은 휴대전화로 다음 약속을 확인하니 시간은 충분할 거 같다기세등등할 때에는 뭐든지 잘 되는 법이며니사타니 앞으로 가부키초에서 만날 단골 거래처의 접객을 성공시키면 더욱이 거액의 건수를 따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오늘따라 갈퀴에 절을 깜빡한 건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그 직후엘리베이터 안에서 격렬한 지진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으드득으드득무언가를 세게 할퀴는 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온다제 손가락이 엘리베이터의 벽을 긁고 있는 소리란 걸 알아차린 건첫 진동이 진정되고 몇 초가 지난 뒤였다.

동승한 도청 직원들은 굳은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엘리베이터의 층수 표시는 ‘9’를 가리킨 상태로 멈춰있었다한 사람이 휴대전화를 꺼내는 걸 보고 니시타니도 떨리는 손으로 가슴 안주머니에 손을 뻗었다.

기다란 안테나를 장착한 가로본능 휴대전화는 거액의 영업을 성공시킨 자신에 대한 포상의 의미로 산 최신식이다원 세그 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거 같은데 쓰면서 알아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매뉴얼 등은 읽지 않았다. 10월 16일 () 18:30. 액정화면에 표시된 시간을 보고 진동이 시작된 지 1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니시타니는 연락처에서 회사 번호를 불러냈다단골 거래처와의 약속시간은 7시 30분이지만이 꼴을 봐서는 지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회사에 연락해서 거래처 직원에게 지각할 지도 모른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말하지 않으면......

가족 분에게 전화하시는 건가요?”

문뜩 뒤에서 들려온 말에 니시타니는 깜짝 놀라 어깨가 움찔거렸다가족이런깜빡하고 있었네!

엉덩방아를 찐 상태로 뒤를 쳐다본다안경을 쓴 얼굴의 젊은 남자가 깜빡임이 멈춘 조명을 등지고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은 수신 불가 지역이에요지진 발생 시 관제운전장치가 작동해서 이제 곧 가장 가까운 층으로 이동할 테니밖에 나갈 때까지 기다리시는 게 좋을 거 같네요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안경을 고쳐 쓴 남자가 냉정하게 말한다도청 직원.....은 아니다가슴에 임시 출입증을 달고 있고다른 동승자들과는 명백하게 분위기가 다르다정장이 하나도 안 어울린다그것보다무슨 코스츔 마냥 뒤죽박죽이다졸업식의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와 같은 인상이라고 해야 하나.

이상하리만큼 침착한 모습도 보통내기가 아니란 걸 느끼게 한다니시타니가 입을 떡 벌리고 그 얼굴을 다시 보는 사이에, ‘움직이네요’ 이렇게 쿨한 남자의 말이 이어졌고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엘리베이터는 이내 멈췄다층수 표시는 ‘9’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엘리베이터는 지진동을 감지하면 가장 가까운 층으로 이동해서 문을 개방해요. ......그런데 안 열리네요문의 이상을 탐지하는 긴급정지장치가 우선적으로 동작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뭐라는 거야이 남자는.

그러니까...... 저기

제 소개가 늦었네요이런 사람입니다

보여준 출입증에 <카이ㆍ이미지ㆍ크리에이트>이런 알쏭달쏭한 회사명과 카이 세츠오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슬프게도 조건반사적으로 서둘러 가슴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낸다.

사이야쿠타로......”

명함을 보고 찔끔찔끔 안경을 고쳐 쓴 카이가 말한다초등학생 때맨날 놀림 받았던 흑역사에 고개를 쳐들고 니시타니는 울컥한 표정으로 카이를 바라보았다.

아뇨니시타니니시타니 히사타로

그렇군요니시나티 상잘 부탁드립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카이를 보며역시나 슬프게도 조건반사적으로 아뇨저야말로’ 이렇게 고개를 숙인다대지진으로 정지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시건방진 어린놈이랑 명함을 교환하다니화가 나고 한심한 마음에 니시타니는 뾰로통하게 입을 다물었다손의 떨림은 멈춰있었다.

 

(현재 지진이 발생하였습니다저희 신주쿠구의 진도는 6도강입니다진원은 도쿄만 북부의 하네다 앞바다 약 10킬로미터깊이는 약 20킬로미터규모는 7.3이라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머지않아 관내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진도6...... 터무니없는 대지진인 것 같은데실감은 아직 나지 않는다.

대체 밖은 어떤 상황인걸까거의 신축인 우리 집과 처자식이 머리에 그려져 니시타니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쓸모없는 휴대전화를 꼭 쥐고 목을 조이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려고 하자, “괜찮으신가요!?” 이런 절박한 목소리가 문 건너편에서 들려왔다.

사람 수와 연령성별을 알려주십시오병 기운이 있거나 부상을 입은 분이 계신가요?”

문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경비원으로 보이는 남성의 목소리가 이어진다동승한 직원 중 한 명이 입에 손을 대고,

남성만 7, 30대에서 40전원 건강상태 양호합니다!”

정장의 어깨와 가슴이 빵빵하게 튀어나온 럭비 선수 같은 체격의 직원이 정확하게 보고하자, “알겠습니다다시 오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소리가 황급히 멀어져 간다가버리는 거야내심 중얼거리며 니시타니는 다시금 엘리베이터 안을 살펴보았다그 말대로 남자만 타고 있다럭비 선수를 필두로 모두 다부진 체격의 소유자들이었다. “하아......” 카이가 의미심장한 소리를 낸다.

무슨 일인데” 니시타니가 묻는다.

도쿄도방재회의에 의하면 이 정도 급의 지진으로 인해 갇히게 될 거라 예상되는 엘리베이터의 수는 최대 9611대예요작년 7치바에서 진도5강의 지진이 발생했었을 때 기억나시나요?”

그러고 보니그랬었지

엘리베이터 총 수의 약 90%를 보수 관리하는 5대 회사의 엘리베이터 안에 갇힌 건은 78건 이었고 구조까지의 평균 소요 시간은 50최대 170분 걸렸다고 하더라고요

“170!? 완전 지각하겠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앞으로 가부키초에 가야만 해단골 거래처 접대가 있거든...... 아아그것보다 가족!”

이 녀석은 왜 이렇게 엘리베이터에 관해서 자세한 거야당연한 의문을 가질 여유도 없이 니시타니는 휴대전화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수신 불가능 지역이라니까요” 카이가 냉정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건 평범한 빌딩 얘기죠도청에는 1층 경비실에 엘리베이터 회사 직원이 상주하고 있으니까빠르면 2, 3늦어져도 10분 안에는 구조하러 온다고 하더라고요갇혀버린 엘리베이터가 동시다발로 발생할 경우는 시간이 걸리겠죠게다가......”

게다가?”

게다가 우선적으로 구조되는 건 아무래도 노약자나 여성이니까요여긴......”

우선순위로 따지면 마지막이다체격이 다부진 동승자들을 둘러보며 언외로 덧붙인 카이는, “지금 몇 시죠?” 이렇게 물었다니시타니는 휴대전화를 보고 “6시 50” 이렇게 대답한다.

시간이 또 최악이네요엘리베이터 회사 직원이 너무 바쁠 때는 필시 유자격자 경비원이 비상개방장치를 사용하여 구조하러 올 건데요이 시간대는 주간과 야간 교대가 끝나고 야간요원밖에 없어요게다가 6시 30분 한창 퇴근할 때에 지진이 일어났으니분명 16대 엘리베이터는 풀가동 중......”

거기까지만 말하고 피식하고 코웃음을 친 카이는 최악의 재난이네요” 이렇게 말했다니시타니는 섬뜩하게 낙천적인 안경 면상에 가볍게 살의를 느꼈다.

 

카이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니시타니 일행이 탄 엘리베이터의 구조는 마지막이 되었고겨우 문이 열린 건 오후 7시 24분이었다조명도 공기청정기도 작동했었다고는 하나한 시간 가깝게 엘리베이터에 갇힌 몸은 뻗을 대로 뻗어있었다.

비상개방장치 – 빈차털이범이나 사용할 법한 금속제의 평평한 봉을 손에 들고 구조하러 달려와 준 경비원은 그 소리꾼 목소리를 지닌 갈퀴 경비원이었다극한 상황에서의 생각치도 못 한 재회...... 작은 감동이 밀려올 터의 순간은 그 직후에 일어난 사고로 인해 물 건너갔다.

여러분괜찮으신가요!” 이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문을 열고 들어오려 하는 소리꾼과 휴대전화를 든 손을 무심결에 앞으로 내민 니시타니그 타이밍의 일치가 비상개방장치의 선단이 휴대전화를 직격하는 불행을 불러와 원 세그 휴대전화의 긴 안테나를 눌러 꺾어버리게 한 것이다.

사용할 순 있겠지만...... 수신 감도가 떨어지겠네요

꺾인 안테나를 손으로 잡고 멍하니 서있는 니시타니를 향해 카이가 냉담하게 말한다가냘픈 안테나를 엄지로 비틀어 구부리며 나도 알아” 이렇게 니시타니는 퉁명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9층 엘리베이터 홀로 나가니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쓸 여유는 완전히 사라졌다.

엘리베이터 홀에 활짝 열린 창문대지진을 버틴 방재창문 너머로 내다보는 도쿄의 거리는 일면의 어둠이었다신주쿠의 네온사인 홍수가 없다집집의 불빛이 보이지 않는다창문을 잃고 창틀에서 비상등의 어두운 불빛을 내는 고층 빌딩무리만이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있다.

엘리베이터 안은 밝았고 공기청정기도 제대로 작동되고 있었다그렇게 최악은 아닐 거야밖으로 나가면 평소와 다름없는 세계가 펼쳐져 있었을 거야 – 마음 한편에서 가볍게 여기려 했다아니그렇게 여기려던 심지가 철저히 부서진 니시타니는 창문에 찰싹 달라붙어 눈 밑으로 펼쳐진 어둠을 바라보았다.

이건 뭐지이건 내가 알고 있는 신주쿠가 아니야왜 눈앞에 숲이 펼쳐진 거지어둡고어두운 숲그 너머에는 더욱이 어두운 평야가 펼쳐져 있고지평선에 가까운 장소에서는 산불로 보이는 불꽃이 여기저기서......

어두운 숲이라뇨사이야쿠 상여긴 도청 서쪽이니까 아래에 있는 건 신주쿠 중앙공원이에요보세요벌써 피난 온 사람들이 이곳저곳에 보이잖아요중앙공원은 니시신주쿠58번가와 3번가의 일부는 광역피난지역으로 지정되었으니까요

양손과 얼굴을 창문에 바싹 붙인 니시타니의 등 뒤로 카이가 기묘하게 느슨한 목소리를 낸다뒤돌아 눈 아래 광경을 내려다본 니시타니는 하지만불이......!” 지평선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쪽은 나카노 부근이네요저긴 목밀 지역이라......”

목밀?”

목조주거밀집지역그래서 화재가 발생하기라도 하면......”

카이는 그 때 처음으로 미간을 살며시 찌푸렸다마른침을 삼킨 것도 잠시니시타니는 휴대전화의 원 세그 기능을 사용해서 텔레비전을 보려고 시도했다안테나가 꺾인 탓인지전파가 약한 탓인지아니면 사용법을 잘 몰라서 그런 건지가로본능 화면에 텔레비전이 보일 기색은 없다.

그럼 전화다집사람 휴대전화그리고 딸과 아들의 휴대전화......

안 돼연결이 안 되네

폭주 방지 때문이에요중계케이블이 끊기거나 기지국이 붕괴되거나 인플루엔자 관련 문제도 있지만재난 발생 시에는 전화교환기의 처리능력 이상의 트래픽이 집중되니까요경찰이나 소방서의 긴급 신고를 방해하지 않도록 통신의 제한을 거는 거죠

그렇군......”

하지만 메일이라면 연결될 가능성이 있어요최근에 NTT도코모가 FOMA의 음성전화와 패킷 통신 네트워크 컨트롤을 분리시켜서 통신이 집중된 쪽만 보다 강력하게 제한할 수 있도록......”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고암튼 안 돼

왜요?”

가족 메일 주소를 몰라서......”

그럼 재난용 통신다이얼 171에 걸어보세요번호를 누른 다음 안내에 따라서 하세요

표정을 바꾼 카이의 말에 못 이겨휴대전화 통화 버튼에 손을 가져가는 찰나, “뭐 하는 거야빨리 비상계단으로 내려가” 경비원에게 한소리 들었다주위를 살펴보니 엘리베이터네 남은 건 카이와 니시타니 단 둘 뿐. “여진이 올지 모르니까 서둘러!” 성내는 목소리에 내몰려 니시타니는 그 자리를 떠났다.

평소보다 어두운 복도는 갈색에 녹색을 배합한 작업복을 입은 한 집단이 빈번하게 오고가고 하며격앙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재난복이에요방재관리과 뿐만 아니라 전 직원이 총동원된 거 같네요” 묻지도 않았는데 카이가 설명한다.

이곳 8층과 9층은 도전체 방재의 핵심인 도쿄도 방재센터예요이 정도 급의 지진이라면 확실하게 재해대책본부가 설치될 거예요본부장은 도쿄도지사부지사경시총감이 부본부장이고 자위대와 구 시 마을지정공동기관의 대표자도 각각 파견돼요재해지의 피해의 경감과 주민생활의 안정을 위해서......”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니시타니는 비상계단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어깨 너머로 카이를 응시했다.

잘 아네이것저것충분히이상 하리 만큼

조금이 아니라 담을 수 있는 모든 불쾌함을 담아 내뱉었다 생각하였으나, “그래요상식이죠” 이렇게 대답한 카이에게선 전혀 불편한 기색이 안 보인다한층 더 고조된 불안과 초조함과 분노의 내압을 빠른 걸음에 맡기고니시타니는 그럼 상식통인 카이 군에게 질문!” 이렇게 등 돌린 상태로 이어갔다.

피난처는 2층으로 괜찮을까

“2층에도 현관은 있으니까 괜찮을 거라 생각하지만. ......왜죠

갈퀴야

?”

갈퀴그게 무사한지 확인해야해

말하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전환하여 비상계단까지의 거리를 단번에 줄였다이제 이 남자와 같이 있기 싫어졌다.

그것보다도 갈퀴다니시타니에게 있어서 행운의 상징끔찍한 미소를 띠운 추녀 탈 등으로 꾸며진 갈퀴딱히 절하지 않았던 걸 사죄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그저 그 갈퀴가 무사한 걸 확인하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지금은 정전이라 어두컴컴해도 아직 세계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당장이라도 원래 도쿄로 돌아올 것이라 믿을 수 있다그 갈퀴가 무사하다면분명.

한심하단 건 알고 있다하지만 지금 다른 무엇을 의지하고 다음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는 거지이 도청에서 나가자마자 말도 안 되는 파괴와 혼란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사이야쿠 상진정하세요뛰면 위험해요!”

황급히 뒤쫓아 오며 카이가 외친다. ‘나는 니시타니라고’ 하는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니시타니는 재난복과 같은 색감의 비상계단을 서둘러 내려갔다.




2007년 10월부터 운용 개시된 긴급지진속보

속보로부터 몇 초가 당신의 운명을 결정한다.

 

 

 

 

‘20초 후에 진도5강의 지진이 옵니다

기상청이 2004년부터 시험 운용하여, 2007년 10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운용을 시작한 긴급지진속보라는 놈이다실제로 지진이 오기 전에 앞으로 이 지역에 이 정도 규모의 지진이 올 거예요’ 이렇게 알려준다지진 예보 같은 것이다.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나오는 뉴스 속보 같은 것이다상업시설 등에서는 관내 방송의 형태로 방송된다각 휴대전화회사에서도 속보를 일제히 개개인의 전화에 전하는 시스템이 개발되어 2008년부터 서비스가 개시되고 있다.

예보가 가능한 건 지진이 일어날 때 발생하는 두 가지 파동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지진이 일어날 때진원에서는 P(종파)와 S(횡파)가 동시에 발생한다. P파가 진원에서 지표면에 다다랐을 때미약한 진동이 일어난다이것이 초기 미동이다한 편, S파는 다이나믹한 진동을 일으킨다이것이 주요동그리고 P파와 S파의 차이점은 땅속에 전해지는 스피드가 다르다는 것이다. P파는 초속 5~7킬로미터, S파는 초속 3~4킬로미터, P파는 S파보다 먼저 관측 포인트에 도착하게 된다. P파를 캐치했다면 그 다음에 바로 S파가 온다이 시간차를 이용해서 곧 지진이 올 겁니다’ 이런 내용을 전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말하자면 실제로 일어난 현상을 보다 빨리 전한다는 얘기다두 파동의 차이는 짧으면 몇 초길어봤자 수 십초하지만 얼마 안 되는 시간이라고 해도 사용하기 나름이다가스레인지 불을 끄고아기를 옷장 앞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새로운 비극을 미연에 방지하는 건 가능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지진 예지를 보면, ‘장기평가라 불리는 것이 중심적이었다문부과학성의 지진조사연구추진본부(한신ㆍ아와지 대지진을 계기로 제정된 지진방재대책특별조치법에 의거해 당시의 총리부에 설치된 부서)가 과거의 지진 발생 시의 통계를 내어, ‘머지않아 이곳에 지진이 일어날 거라고 말할 수 있을 거 같군’ 이렇게 예측하는 것이다그 정확도는 앞으로 수 십 년에서 수 백 년 사이에 이 지역에 지진이 발생할 확률은 이 정도’ 이것이 한계다일상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정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그리고 이건 과거에 지진이 발생한’ 이러한 결과로부터 다음은 언제 일어날 지를 예측하는 것이다때문에 지진의 근원에 의거한 예지의 중요성이 계속 주장되어왔다.

그런 상황 속에서 기대를 받고 있는 건 아스페리티를 체크함으로써 예지의 정확도를 올리고자 하는 생각이다그럼 아스페리티란 무엇인가.

지구 표면은 플레이트라 하는 암반으로 덮여있다두께는 수십km, 지구 전체를 십 수 장으로 감싸고 있고이것이 연간 몇cm씩 움직이고 있다플레이트 아래에는 암석이 고열로 인해 걸쭉해진 맨틀이란 것이 있으며이놈이 대류하기 때문에 플레이트가 움직이는 것이다태평양 플레이트 등의 해양 플레이트는 유라시아 플레이트 등의 육지 측의 플레이트에 부딪히면 그 아래로 내려가려고 한다이때 생기는 것이 해구와 트로프라 불리는 해저골짜기다플레이트끼리 접하는 면은 천천히 어긋나간다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그래서 모형을 만들어 보자그렇다고 대단한 건 아니다필요한 건 오른손과 왼손의 손바닥만 있으면 된다합장한 다음 옆으로 쓰러트리면 된다이것이 두 플레이트의 접촉면이 때 위에 있는 게 유라시아 플레이트아래에 있는 게 태평양 플레이트다그렇게 양손바닥을 미끄러지게 한다발생하는 현상은 대게 이런 것이다하지만 그 접하는 면 가운데 딱 달라붙은 부분이 있다아스페리티다이해가 잘 안 갈 것이다그래서 방금 전의 모형’ 재등장이번엔 손바닥에 밥풀을 몇 개 놓고 합장밥풀대기가 뭉개질 때까지 세게 합장손바닥을 미끄러지게 해봅시다...... 밥풀대기에 딱 달라붙은 부분만이 잘 안 움직일 것이다이것이 아스페리티다.

플레이트끼리의 접촉면 전체는 천천히 엇갈리지만딱 달라붙은 아스페리티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하지만 영원히 어긋나지 않는 것은 아니며역시 일정 이상의 힘이 가해지면 어긋나게 된다게다가 오랫동안 어긋나지 않았던 만큼한 번 벗겨지면 그 반동으로 인해 기세 좋게 어긋나게 된다이 때 지진이 발생한다일본열도 주변에는 태평양 플레이트필리핀해 플레이트유라시아 플레이트북미 플레이트가 대립하고 있어서 이러한 플레이트 경계에서 일어나는 지진이 매우 많은 것이다.

또한 플레이트끼리 서로 밀어낼 때육측陸測 플레이트의 약한 부분이 똑 하고 깨지는 경우도 있다이것이 단층이다지각변동에 의해 단층이 어긋나게 되면 이 또한 지진이 발생한다. 2007년 7월 16일에 발생한 니가타 현 주에쓰 오키 지진은 이러한 타입의 지진이다과거에 몇 번이나 어긋나앞으로도 어긋날 것이 예측되는 단층을 활단층이라 부른다일본열도 주변에는 약 2000개의 활단층이 존재한다고 한다그래서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현재 일본에는 1200개 이상의 지진관측점과 1200개 이상의 GPS관측점이 있으며일본열도의 세세한 지진과 지각변동을 자세히 캐치하고 있다.

지표의 움직임을 열심히 관찰하고 있는 건 앞으로 일어날 지진을 예측하기 위함이다지각변동을 관측하여 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을 행한다아스페리티 주변의 어긋나가는 부분의 움직임을 체크함으로 인해 언제쯤 아스페리티가 벗겨질지를 예측하려 하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예측이 정확도가 실용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결국 현재 믿을 수 있는 건 단 몇 초의 유예시간을 벌어주는 긴급지진속보가 전부이다.

물론 니시타니 상은 그런 건 아예 알지도 모르고 고층빌딩에 올라간 셈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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