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대지진 발생! 어쩌지
번개소리와 같은 합판이 갈라지는 소리가 귀에 울렸다. 마치 텀블링 하듯 뛰어오르며, 그것은 시작되었다.
천장 조명이 깜빡이고 비명과 신음 소리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울려퍼진다. 아래서 뚫고 올라오는 진동이 엉덩방아를 찐 온몸에 전파된다.
아, 아, 아, 아, 아. 이상한 소리를 내며 니시타니 히사타로는 벽에 등을 대고 깜빡깜빡 거리는 천장의 형광등을 바라보았다. 엘리베이터가 낙하한 것이 아니란 건 감각적으로 알 수 있다. 지진 –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지진. 수도권 대지를 꿀렁꿀렁 물결치게 하여 이 도청을 밑바닥부터 흔들어 쓰러트릴 만큼의 상식을 벗어난 수준의 지진이, 실로 지금 일어난 것이다. 누군가의 엉덩이에 얼굴을 짓눌려 제대로 숨도 못 쉬는 혼란 속, 니시타니의 가슴 한편에 떠오른 건 ‘결국’이란 한 단어였다.
그렇다, 결국. 온다고 온다고 끊임없이 말 했었고, 텔레비전과 주간지에서도 어마어마한 피해를 예상했던 궁극의 재난 – 관동대지진. 전동차 안 광고에 쓰여 있는 ‘수도붕괴’ ‘사상사 수 천 명’ 이런 문구를 보며 무섭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는 언제가 찾아올 죽음과 같은 뜻이었던 수도 직하형 지진. 그것이 결국 시작되었다.
하지만 왜. 왜, 하필이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는 때에, 그것도 도쿄도청이라는 신주쿠에서도 1, 2등을 다투는 고층빌딩 안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는 때에. 이성은 작용되지 않으며, 니시타니는 공포 속에서 눈을 갈팡질팡 움직였다. 깜빡이는 조명 아래로 떠오르는 동승자들의 얼굴, 얼굴, 얼굴. 다들 파랗게 질려 굳어졌고, 벽에 등을 기대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도청 직원들도 그렇다. 문뜩, 어쩌면 폭탄 테러?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으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진동이 인공적인 것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이 진동은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인가. 이대로 엘리베이터의 케이블이 끊어져 1층 로비에 내팽개쳐지면...... 허공에 매달린 내 몸을 실감한 순간, 항문이 오므라들며 발밑에 펼쳐지는 로비 1층의 광경이 니시타니 머릿속에 떠올랐다. 요 한 달 간, 계속 드나들던 현관입구. 이제 그곳을 살아서 나가지 못 할 거라 생각하니, 정말 도청스러운 모습의 로비가 눈부신 빛의 이미지에 감싸여, ‘맞다, 갈퀴!’ 이런 신의 계시와 비슷한 목소리가 니시타니 머릿속에서 폭발했다.
실용품이 아닌 추녀 탈, 방망이, 작은 망치 등, 경사스런 아이템을 매단 길조를 비는 갈퀴. 도청 제1본청사의 2층에는 그것이 장식되어 있다. 매우 크다. 손잡이 부분도 포함하면 5미터에 해당하는 물건이 인포메이션 옆 벽에 와이어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오늘은 그 갈퀴를 깜빡 잊고 있었다. 도청에 올 때는 반드시 기도를 올리곤 했는데. 그래서 이런 꼴을..... 이러한 단정으론 이어지지 않았고, 니시타니는 눈을 꼭 감았다.
눈 안에서 갈퀴에 장식된 추녀 탈이 미묘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임종의 순간에 떠올리기엔 너무나도 끔찍한 미소였다.
도청 제1본청사는 도청의 중심적인 건축물이다. 지상 48층, 높이 2백43미터. 33층부터 상부는 두 채로 갈라져, 45층에는 무료입장 전망대를 운영하고 있다.
1층에는 도쿄 관광정보를 PR하는 코너와 매점이 있고, 천장이 없는 형태인 2층에는 도정관계서적을 다루는 서점과 도청 인포메이션이 있다. 이 두 층이 로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전망대 목적인 관광객, 다양한 민원으로 찾아오는 사람들 등, 평일에도 웬만한 규모의 공항을 연상시킬 정도로 붐비고 있다. 니시타니가 갈퀴를 발견한 건 한 달 전, 처음 도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었다.
아주 거대한 물건이었다. 약 3미터의 ‘갈퀴’의 중심에 미니추어 도청과 배후를 지키는 추녀 탈. 좌우로는 마네키네코와 거북이가 배치되었고, ‘도쿄부’ ‘도내안전’ ‘천객만래’라 적힌 팻말이 그 전면에 나란히 장식되어있다. 역시 일본의 수도를 다스리는 도청의 갈퀴, 너무 경사스러운 거 아닌가 생각하며 보고 있자,
“그거,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거라 하네”
인포메이션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환갑으로 보이는 경비원이 말을 걸어왔다. 파란 셔츠에 파란색 바지, 왼쪽 어깨에는 무전기가 달린 복장에 소리꾼을 떠올리는 걸쭉한 목소리였다는 걸 기억하고 있다.
“저기 봐봐, 오오토리신사라고 적혀 있지? 아사쿠사에 있는 오오토리신사가 기부한 거야.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굉장한 거라네”
도청의 만물박사와 같은 모습의 경비원은, 그럼 가장 큰 갈퀴는 어디에 있죠? 이렇게 대화를 이어나가려한 니시타니를 무시하고 씩 웃었다.
“자네, 영업 쪽 사람이지? 아마 복 받을 거니까 꼭 절을 올리는 게 좋을 거야”
그렇게만 말하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는 표정으로 떠났다. 갈퀴 앞에 남겨진 니시타니는 거대한 유리창에 바친 자신의 모습에 시선을 옮겼다.
딱 봐도 니시타니 히사타로는 영업사원이다. 그가 다루는 건 책상 위에 까는 매트. 방금 전의 경비원을 한 번 보고 경비원이라 안 것처럼, 니시타니를 영업 사원으로 보이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인가. 창문에 비친 42세 중년 남자와 눈싸움을 하며 니시타니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회색 정장에 가죽 구두, 목덜미만 깔끔하게 정리한 헤어스타일. 평균 체격에 평균 키......를 자칭하던 건 10년 전의 일이고, 현재는 점점 중년 몸매의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매트를 보다 아름답게 보이게 하기 위해 손 관리만은 정성을 들이고 있으나, 그런 건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결국 눈에 띄는 건 아무것도 없다. ‘영업사원’ 이렇게 말하면 크게 빗나가지 않는 무명의 샐러리맨인가. 가볍게 탄식을 한 니시타니는 자조적인 쓴웃음을 갈퀴에 던졌다.
“안녕하십니까, 영업하는 놈입니다. 아껴주십시오”
갈퀴의 공덕은 즉시 발생했다. 그날 중에 다음 방문할 때 샘플을 가지고 와보라는 포인트를 담당자에게서 따낸 것이다. 이후, 도청에 얼굴을 비출 때마다 먼저 2층에 들리는 것이 니시타니의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니시타니가 취급하는 고급책상매트 납입이 결정되었다. 원청이 길을 터주었다고는 하나, 랭크가 높은 매트 세일즈에 성공한 건 니시타니의 공적이며, 사내에서의 그의 주가는 크게 올랐다. 오늘 10월 16일은 그 최종적인 미팅을 가지는 날로, 담당자와 이야기를 마치고 엘리베이터에 탄 건 오후 6시 6분 29초의 일이다. 기기변경한지 얼마 되지 않은 휴대전화로 다음 약속을 확인하니 시간은 충분할 거 같다. 기세등등할 때에는 뭐든지 잘 되는 법이며, 니사타니 앞으로 가부키초에서 만날 단골 거래처의 접객을 성공시키면 더욱이 거액의 건수를 따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오늘따라 갈퀴에 절을 깜빡한 건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그 직후, 엘리베이터 안에서 격렬한 지진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으드득으드득, 무언가를 세게 할퀴는 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온다. 제 손가락이 엘리베이터의 벽을 긁고 있는 소리란 걸 알아차린 건, 첫 진동이 진정되고 몇 초가 지난 뒤였다.
동승한 도청 직원들은 굳은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엘리베이터의 층수 표시는 ‘9’를 가리킨 상태로 멈춰있었다. 한 사람이 휴대전화를 꺼내는 걸 보고 니시타니도 떨리는 손으로 가슴 안주머니에 손을 뻗었다.
기다란 안테나를 장착한 가로본능 휴대전화는 거액의 영업을 성공시킨 자신에 대한 포상의 의미로 산 최신식이다. 원 세그 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거 같은데 쓰면서 알아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매뉴얼 등은 읽지 않았다. 10월 16일 (화) 18:30. 액정화면에 표시된 시간을 보고 진동이 시작된 지 1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니시타니는 연락처에서 회사 번호를 불러냈다. 단골 거래처와의 약속시간은 7시 30분이지만, 이 꼴을 봐서는 지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회사에 연락해서 거래처 직원에게 지각할 지도 모른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말하지 않으면......
“가족 분에게 전화하시는 건가요?”
문뜩 뒤에서 들려온 말에 니시타니는 깜짝 놀라 어깨가 움찔거렸다. 가족? 이런, 깜빡하고 있었네!
엉덩방아를 찐 상태로 뒤를 쳐다본다. 안경을 쓴 얼굴의 젊은 남자가 깜빡임이 멈춘 조명을 등지고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은 수신 불가 지역이에요. 지진 발생 시 관제운전장치가 작동해서 이제 곧 가장 가까운 층으로 이동할 테니, 밖에 나갈 때까지 기다리시는 게 좋을 거 같네요”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안경을 고쳐 쓴 남자가 냉정하게 말한다. 도청 직원.....은 아니다. 가슴에 임시 출입증을 달고 있고, 다른 동승자들과는 명백하게 분위기가 다르다. 정장이 하나도 안 어울린다. 그것보다, 무슨 코스츔 마냥 뒤죽박죽이다. 졸업식의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와 같은 인상, 이라고 해야 하나.
이상하리만큼 침착한 모습도 보통내기가 아니란 걸 느끼게 한다. 니시타니가 입을 떡 벌리고 그 얼굴을 다시 보는 사이에, ‘아, 움직이네요’ 이렇게 쿨한 남자의 말이 이어졌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엘리베이터는 이내 멈췄다. 층수 표시는 ‘9’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엘리베이터는 지진동을 감지하면 가장 가까운 층으로 이동해서 문을 개방해요. ......그런데 안 열리네요. 문의 이상을 탐지하는 긴급정지장치가 우선적으로 동작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뭐라는 거야, 이 남자는.
“그러니까...... 저기”
“아, 제 소개가 늦었네요. 이런 사람입니다”
보여준 출입증에 <카이ㆍ이미지ㆍ크리에이트>이런 알쏭달쏭한 회사명과 카이 세츠오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슬프게도 조건반사적으로 서둘러 가슴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낸다.
“사이야쿠타로......”
명함을 보고 찔끔찔끔 안경을 고쳐 쓴 카이가 말한다. 초등학생 때, 맨날 놀림 받았던 흑역사에 고개를 쳐들고 니시타니는 울컥한 표정으로 카이를 바라보았다.
“아뇨, 니시타니, 니시타니 히사타로”
“아, 그렇군요. 니시나티 상. 잘 부탁드립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카이를 보며, 역시나 슬프게도 조건반사적으로 ‘아뇨, 저야말로’ 이렇게 고개를 숙인다. 대지진으로 정지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시건방진 어린놈이랑 명함을 교환하다니. 화가 나고 한심한 마음에 니시타니는 뾰로통하게 입을 다물었다. 손의 떨림은 멈춰있었다.
(현재 지진이 발생하였습니다. 저희 신주쿠구의 진도는 6도강입니다. 진원은 도쿄만 북부의 하네다 앞바다 약 10킬로미터, 깊이는 약 20킬로미터. 규모는 7.3이라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머지않아 관내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진도6강...... 터무니없는 대지진인 것 같은데, 실감은 아직 나지 않는다.
대체 밖은 어떤 상황인걸까. 거의 신축인 우리 집과 처자식이 머리에 그려져 니시타니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쓸모없는 휴대전화를 꼭 쥐고 목을 조이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려고 하자, “괜찮으신가요!?” 이런 절박한 목소리가 문 건너편에서 들려왔다.
“사람 수와 연령, 성별을 알려주십시오. 병 기운이 있거나 부상을 입은 분이 계신가요?”
문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경비원으로 보이는 남성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동승한 직원 중 한 명이 입에 손을 대고,
“남성만 7명, 30대에서 40대. 전원 건강상태 양호합니다!”
정장의 어깨와 가슴이 빵빵하게 튀어나온 럭비 선수 같은 체격의 직원이 정확하게 보고하자, “알겠습니다, 다시 오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소리가 황급히 멀어져 간다. 가버리는 거야? 내심 중얼거리며 니시타니는 다시금 엘리베이터 안을 살펴보았다. 그 말대로 남자만 타고 있다. 럭비 선수를 필두로 모두 다부진 체격의 소유자들이었다. “하아......” 카이가 의미심장한 소리를 낸다.
“왜, 무슨 일인데” 니시타니가 묻는다.
“도쿄도방재회의에 의하면 이 정도 급의 지진으로 인해 갇히게 될 거라 예상되는 엘리베이터의 수는 최대 9천6백11대예요. 작년 7월, 치바에서 진도5강의 지진이 발생했었을 때 기억나시나요?”
“그러고 보니, 그랬었지”
“엘리베이터 총 수의 약 90%를 보수 관리하는 5대 회사의 엘리베이터 안에 갇힌 건은 78건 이었고 구조까지의 평균 소요 시간은 50분, 최대 170분 걸렸다고 하더라고요”
“170분!? 완전 지각하겠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앞으로 가부키초에 가야만 해. 단골 거래처 접대가 있거든...... 아아, 그것보다 가족!”
이 녀석은 왜 이렇게 엘리베이터에 관해서 자세한 거야. 당연한 의문을 가질 여유도 없이 니시타니는 휴대전화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수신 불가능 지역이라니까요” 카이가 냉정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건 평범한 빌딩 얘기죠. 도청에는 1층 경비실에 엘리베이터 회사 직원이 상주하고 있으니까, 빠르면 2, 3분, 늦어져도 10분 안에는 구조하러 온다고 하더라고요. 단, 갇혀버린 엘리베이터가 동시다발로 발생할 경우는 시간이 걸리겠죠. 게다가......”
“게다가?”
“게다가 우선적으로 구조되는 건 아무래도 노약자나 여성이니까요. 여긴......”
우선순위로 따지면 마지막이다. 체격이 다부진 동승자들을 둘러보며 언외로 덧붙인 카이는, “지금 몇 시죠?” 이렇게 물었다. 니시타니는 휴대전화를 보고 “6시 50분” 이렇게 대답한다.
“시간이 또 최악이네요. 엘리베이터 회사 직원이 너무 바쁠 때는 필시 유자격자 경비원이 비상개방장치를 사용하여 구조하러 올 건데요, 이 시간대는 주간과 야간 교대가 끝나고 야간요원밖에 없어요. 게다가 6시 30분 한창 퇴근할 때에 지진이 일어났으니, 분명 16대 엘리베이터는 풀가동 중......”
거기까지만 말하고 피식하고 코웃음을 친 카이는 “최악의 재난이네요” 이렇게 말했다. 니시타니는 섬뜩하게 낙천적인 안경 면상에 가볍게 살의를 느꼈다.
카이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니시타니 일행이 탄 엘리베이터의 구조는 마지막이 되었고, 겨우 문이 열린 건 오후 7시 24분이었다. 조명도 공기청정기도 작동했었다고는 하나, 한 시간 가깝게 엘리베이터에 갇힌 몸은 뻗을 대로 뻗어있었다.
비상개방장치 – 빈차털이범이나 사용할 법한 금속제의 평평한 봉을 손에 들고 구조하러 달려와 준 경비원은 그 소리꾼 목소리를 지닌 갈퀴 경비원이었다. 극한 상황에서의 생각치도 못 한 재회...... 작은 감동이 밀려올 터의 순간은 그 직후에 일어난 사고로 인해 물 건너갔다.
“여러분, 괜찮으신가요!” 이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문을 열고 들어오려 하는 소리꾼과 휴대전화를 든 손을 무심결에 앞으로 내민 니시타니. 그 타이밍의 일치가 비상개방장치의 선단이 휴대전화를 직격하는 불행을 불러와 원 세그 휴대전화의 긴 안테나를 눌러 꺾어버리게 한 것이다.
“사용할 순 있겠지만...... 수신 감도가 떨어지겠네요”
꺾인 안테나를 손으로 잡고 멍하니 서있는 니시타니를 향해 카이가 냉담하게 말한다. 가냘픈 안테나를 엄지로 비틀어 구부리며 “나도 알아” 이렇게 니시타니는 퉁명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9층 엘리베이터 홀로 나가니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쓸 여유는 완전히 사라졌다.
엘리베이터 홀에 활짝 열린 창문. 대지진을 버틴 방재창문 너머로 내다보는 도쿄의 거리는 일면의 어둠이었다. 신주쿠의 네온사인 홍수가 없다. 집집의 불빛이 보이지 않는다. 창문을 잃고 창틀에서 비상등의 어두운 불빛을 내는 고층 빌딩무리만이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있다.
엘리베이터 안은 밝았고 공기청정기도 제대로 작동되고 있었다. 그렇게 최악은 아닐 거야, 밖으로 나가면 평소와 다름없는 세계가 펼쳐져 있었을 거야 – 마음 한편에서 가볍게 여기려 했다. 아니, 그렇게 여기려던 심지가 철저히 부서진 니시타니는 창문에 찰싹 달라붙어 눈 밑으로 펼쳐진 어둠을 바라보았다.
이건 뭐지? 이건 내가 알고 있는 신주쿠가 아니야. 왜 눈앞에 숲이 펼쳐진 거지? 어둡고, 어두운 숲. 그 너머에는 더욱이 어두운 평야가 펼쳐져 있고, 지평선에 가까운 장소에서는 산불로 보이는 불꽃이 여기저기서......
“어두운 숲이라뇨, 사이야쿠 상. 여긴 도청 서쪽이니까 아래에 있는 건 신주쿠 중앙공원이에요. 보세요, 벌써 피난 온 사람들이 이곳저곳에 보이잖아요. 중앙공원은 니시신주쿠5ㆍ8번가와 3번가의 일부는 광역피난지역으로 지정되었으니까요”
양손과 얼굴을 창문에 바싹 붙인 니시타니의 등 뒤로 카이가 기묘하게 느슨한 목소리를 낸다. 뭐? 뒤돌아 눈 아래 광경을 내려다본 니시타니는 “하, 하지만, 불이......!” 지평선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쪽은 나카노 부근이네요. 저긴 목밀 지역이라......”
“목밀?”
“목조주거밀집지역. 그래서 화재가 발생하기라도 하면......”
카이는 그 때 처음으로 미간을 살며시 찌푸렸다. 마른침을 삼킨 것도 잠시, 니시타니는 휴대전화의 원 세그 기능을 사용해서 텔레비전을 보려고 시도했다. 안테나가 꺾인 탓인지, 전파가 약한 탓인지, 아니면 사용법을 잘 몰라서 그런 건지, 가로본능 화면에 텔레비전이 보일 기색은 없다.
그럼 전화다. 집, 집사람 휴대전화, 그리고 딸과 아들의 휴대전화......
“안 돼, 연결이 안 되네”
“폭주 방지 때문이에요. 중계케이블이 끊기거나 기지국이 붕괴되거나 인플루엔자 관련 문제도 있지만, 재난 발생 시에는 전화교환기의 처리능력 이상의 트래픽이 집중되니까요. 경찰이나 소방서의 긴급 신고를 방해하지 않도록 통신의 제한을 거는 거죠”
“그렇군......”
“하지만 메일이라면 연결될 가능성이 있어요. 최근에 NTT도코모가 FOMA의 음성전화와 패킷 통신 네트워크 컨트롤을 분리시켜서 통신이 집중된 쪽만 보다 강력하게 제한할 수 있도록......”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고, 암튼 안 돼”
“왜요?”
“가족 메일 주소를 몰라서......”
“그럼 재난용 통신다이얼 171에 걸어보세요. 번호를 누른 다음 안내에 따라서 하세요”
표정을 바꾼 카이의 말에 못 이겨, 휴대전화 통화 버튼에 손을 가져가는 찰나, “뭐 하는 거야! 빨리 비상계단으로 내려가” 경비원에게 한소리 들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엘리베이터네 남은 건 카이와 니시타니 단 둘 뿐. “여진이 올지 모르니까 서둘러!” 성내는 목소리에 내몰려 니시타니는 그 자리를 떠났다.
평소보다 어두운 복도는 갈색에 녹색을 배합한 작업복을 입은 한 집단이 빈번하게 오고가고 하며, 격앙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재난복이에요. 방재관리과 뿐만 아니라 전 직원이 총동원된 거 같네요” 묻지도 않았는데 카이가 설명한다.
“이곳 8층과 9층은 도전체 방재의 핵심인 도쿄도 방재센터예요. 이 정도 급의 지진이라면 확실하게 재해대책본부가 설치될 거예요. 본부장은 도쿄도지사. 부지사, 경시총감이 부본부장이고 자위대와 구 시 마을, 지정공동기관의 대표자도 각각 파견돼요. 재해지의 피해의 경감과 주민생활의 안정을 위해서......”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니시타니는 비상계단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어깨 너머로 카이를 응시했다.
“너, 잘 아네. 이것저것. 충분히. 이상 하리 만큼”
조금이 아니라 담을 수 있는 모든 불쾌함을 담아 내뱉었다 생각하였으나, “그래요? 상식이죠” 이렇게 대답한 카이에게선 전혀 불편한 기색이 안 보인다. 한층 더 고조된 불안과 초조함과 분노의 내압을 빠른 걸음에 맡기고, 니시타니는 “그럼 상식통인 카이 군에게 질문!” 이렇게 등 돌린 상태로 이어갔다.
“피난처는 2층으로 괜찮을까”
“2층에도 현관은 있으니까 괜찮을 거라 생각하지만. ......왜죠”
“갈퀴야”
“네?”
“갈퀴! 그게 무사한지 확인해야해”
말하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전환하여 비상계단까지의 거리를 단번에 줄였다. 이제 이 남자와 같이 있기 싫어졌다.
그것보다도 갈퀴다. 니시타니에게 있어서 행운의 상징, 끔찍한 미소를 띠운 추녀 탈 등으로 꾸며진 갈퀴. 딱히 절하지 않았던 걸 사죄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저 그 갈퀴가 무사한 걸 확인하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정전이라 어두컴컴해도 아직 세계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원래 도쿄로 돌아올 것이라 믿을 수 있다. 그 갈퀴가 무사하다면, 분명.
한심하단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다른 무엇을 의지하고 다음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는 거지? 이 도청에서 나가자마자 말도 안 되는 파괴와 혼란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사이야쿠 상, 진정하세요! 뛰면 위험해요!”
황급히 뒤쫓아 오며 카이가 외친다. ‘나는 니시타니라고’ 하는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니시타니는 재난복과 같은 색감의 비상계단을 서둘러 내려갔다.
2007년 10월부터 운용 개시된 ‘긴급지진속보’
‘속보’로부터 몇 초가 당신의 운명을 결정한다.
‘20초 후에 진도5강의 지진이 옵니다’
기상청이 2004년부터 시험 운용하여, 2007년 10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운용을 시작한 긴급지진속보라는 놈이다. 실제로 지진이 오기 전에 ‘앞으로 이 지역에 이 정도 규모의 지진이 올 거예요’ 이렇게 알려준다. 지진 예보 같은 것이다.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나오는 뉴스 속보 같은 것이다. 상업시설 등에서는 관내 방송의 형태로 방송된다. 각 휴대전화회사에서도 속보를 일제히 개개인의 전화에 전하는 시스템이 개발되어 2008년부터 서비스가 개시되고 있다.
‘예보’가 가능한 건 지진이 일어날 때 발생하는 두 가지 파동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지진이 일어날 때, 진원에서는 P파(종파)와 S파(횡파)가 동시에 발생한다. P파가 진원에서 지표면에 다다랐을 때, 미약한 진동이 일어난다. 이것이 초기 미동이다. 한 편, S파는 다이나믹한 진동을 일으킨다. 이것이 주요동. 그리고 P파와 S파의 차이점은 땅속에 전해지는 스피드가 다르다는 것이다. P파는 초속 5~7킬로미터, S파는 초속 3~4킬로미터. 즉, P파는 S파보다 먼저 관측 포인트에 도착하게 된다. P파를 캐치했다면 그 다음에 바로 S파가 온다. 이 시간차를 이용해서 ‘곧 지진이 올 겁니다’ 이런 내용을 전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말하자면 실제로 일어난 현상을 보다 빨리 전한다는 얘기다. 두 파동의 차이는 짧으면 몇 초. 길어봤자 수 십초. 하지만 얼마 안 되는 시간이라고 해도 사용하기 나름이다.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아기를 옷장 앞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새로운 비극을 미연에 방지하는 건 가능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지진 예지를 보면, ‘장기평가’라 불리는 것이 중심적이었다. 문부과학성의 지진조사연구추진본부(한신ㆍ아와지 대지진을 계기로 제정된 지진방재대책특별조치법에 의거해 당시의 총리부에 설치된 부서)가 과거의 지진 발생 시의 통계를 내어, ‘머지않아 이곳에 지진이 일어날 거라고 말할 수 있을 거 같군’ 이렇게 예측하는 것이다. 단, 그 정확도는 ‘앞으로 수 십 년에서 수 백 년 사이에 이 지역에 지진이 발생할 확률은 이 정도’ 이것이 한계다. 일상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정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리고 이건 과거에 ‘지진이 발생한’ 이러한 결과로부터 다음은 언제 일어날 지를 예측하는 것이다. 때문에 지진의 근원에 의거한 예지의 중요성이 계속 주장되어왔다.
그런 상황 속에서 기대를 받고 있는 건 ‘아스페리티’를 체크함으로써 예지의 정확도를 올리고자 하는 생각이다. 그럼 ‘아스페리티’란 무엇인가.
지구 표면은 플레이트라 하는 암반으로 덮여있다. 두께는 수십km, 지구 전체를 십 수 장으로 감싸고 있고, 이것이 연간 몇cm씩 움직이고 있다. 플레이트 아래에는 암석이 고열로 인해 걸쭉해진 맨틀이란 것이 있으며, 이놈이 대류하기 때문에 플레이트가 움직이는 것이다. 태평양 플레이트 등의 해양 플레이트는 유라시아 플레이트 등의 육지 측의 플레이트에 부딪히면 그 아래로 내려가려고 한다. 이때 생기는 것이 해구와 트로프라 불리는 해저골짜기다. 플레이트끼리 접하는 면은 천천히 어긋나간다.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모형을 만들어 보자. 그렇다고 대단한 건 아니다. 필요한 건 오른손과 왼손의 손바닥만 있으면 된다. 합장한 다음 옆으로 쓰러트리면 된다. 끝. 이것이 두 플레이트의 접촉면. 이 때 위에 있는 게 유라시아 플레이트, 아래에 있는 게 태평양 플레이트다. 그렇게 양손바닥을 미끄러지게 한다. 발생하는 현상은 대게 이런 것이다. 하지만 그 접하는 면 가운데 딱 달라붙은 부분이 있다. 아스페리티다. 이해가 잘 안 갈 것이다. 그래서 방금 전의 ‘모형’ 재등장. 이번엔 손바닥에 밥풀을 몇 개 놓고 합장. 밥풀대기가 뭉개질 때까지 세게 합장. 손바닥을 미끄러지게 해봅시다...... 밥풀대기에 딱 달라붙은 부분만이 잘 안 움직일 것이다. 이것이 아스페리티다.
플레이트끼리의 접촉면 전체는 천천히 엇갈리지만, 딱 달라붙은 아스페리티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원히 어긋나지 않는 것은 아니며, 역시 일정 이상의 힘이 가해지면 어긋나게 된다. 게다가 오랫동안 어긋나지 않았던 만큼, 한 번 벗겨지면 그 반동으로 인해 기세 좋게 어긋나게 된다. 이 때 지진이 발생한다. 일본열도 주변에는 태평양 플레이트, 필리핀해 플레이트, 유라시아 플레이트, 북미 플레이트가 대립하고 있어서 이러한 플레이트 경계에서 일어나는 지진이 매우 많은 것이다.
또한 플레이트끼리 서로 밀어낼 때, 육측陸測 플레이트의 약한 부분이 똑 하고 깨지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단층이다. 지각변동에 의해 단층이 어긋나게 되면 이 또한 지진이 발생한다. 2007년 7월 16일에 발생한 니가타 현 주에쓰 오키 지진은 이러한 타입의 지진이다. 과거에 몇 번이나 어긋나, 앞으로도 어긋날 것이 예측되는 단층을 활단층이라 부른다. 일본열도 주변에는 약 2000개의 활단층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래서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현재 일본에는 1200개 이상의 지진관측점과 1200개 이상의 GPS관측점이 있으며, 일본열도의 세세한 지진과 지각변동을 자세히 캐치하고 있다.
지표의 움직임을 열심히 관찰하고 있는 건 앞으로 일어날 지진을 예측하기 위함이다. 지각변동을 관측하여 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을 행한다. 아스페리티 주변의 어긋나가는 부분의 움직임을 체크함으로 인해 언제쯤 아스페리티가 벗겨질지를 예측하려 하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예측이 정확도가 실용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결국 현재 믿을 수 있는 건 단 몇 초의 유예시간을 벌어주는 ‘긴급지진속보’가 전부이다.
물론 니시타니 상은 그런 건 아예 알지도 모르고 고층빌딩에 올라간 셈이지만.